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이젤 만셀 (문단 편집) === 쟁쟁한 라이벌, 비운의 사나이 === [[파일:external/copawriters.files.wordpress.com/blog-airton-sena-4-in_ayrton_senna_11.jpg|width=400]] 왼쪽부터 '''88, 90, 91년 월드챔피언 [[아일톤 세나]]''' '''85, 86, 89, 93년 월드챔피언 [[알랭 프로스트]]''' '''92년 월드 챔피언 나이젤 만셀''' '''81, 83, 87년 월드챔피언 [[넬슨 피케]]''' 즉 81년부터 93년까지 단 2시즌만 빼놓고 이 네 사람들이 챔피언을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 || [[파일:1992-senna-vs--mansell-(10-laps)-in-monaco-g-p-_big.jpg]] || || F1 역사상 가장 유명한 휠투휠 장면인 1991년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만셀과 세나. 둘은 사진 속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저렇게 백미러로 서로를 쳐다보며 달렸다. || ''' 프로스트와 더불어 아일톤 세나의 최대 호적수, 그러나 챔피언 달성까진 기나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 그가 F1에 몸담고 있던 시기는 F1 역사상 천재적인 드라이버들이 엄청난 경쟁을 했던 시기였다. 87년 시즌 챔피언의 꿈을 향해 불사르지만 팀메이트인 [[넬슨 피케]]보다 더 많은 우승을 하고도 잦은 사고와 리타이어로 포인트를 까먹으며 다시 한 번 드라이버 순위 2위를 기록하고 만다. --[[콩라인]]--[* 심지어 당시 친정팀인 로터스의 [[아일톤 세나]]에게도 거센 추격을 받아야 했다.] 다음해인 1988년에는 틈만 나면 엔진과 서스펜션 문제로 퍼지는 [[윌리엄스 레이싱|윌리엄스]] 머신으로[* 그도 그럴것이 당시 윌리엄스는 잘 쓰던 [[혼다]]의 [[터보]][[엔진]]을 [[맥라렌]]에게 빼앗기고, 다소 인기없던 엔진 메이커인 저드의 엔진을 사용한데다, 새로 개발한 서스펜션이 문제가 많았다.] 단 두 번의 완주[* 하지만 그 두 번의 완주가 모두 포디엄에 들었다.]밖에 하지 못했고, 엎친 데 덮친격으로 시즌 중반에는 수두까지 걸리면서 2번의 그랑프리를 불참하게 된다. 결국 1988 시즌을 말아먹은 9위 만셀은 이윽고 [[페라리]]로 이적하게 된다. [[엔초 페라리]]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선택한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드라이버로서 [[페라리]]에서 뛰게 되었지만, 당시 [[페라리]]는 영국의 두 팀[* [[맥라렌 F1 팀|맥라렌]]과 [[윌리엄스 레이싱|윌리엄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레이스카 경쟁력이 좋지 않았고, 1988년부터 1990년까지는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가 서로 [[맥라렌]]에서 치고 박으며 챔피언십을 경쟁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만셀은 낄 수가 없었다. 결국 [[페라리]]에서 1990년 드라이버 순위 5위를 기록했으며, 이를 끝으로 은퇴를 생각하고 있던 그에게 윌리엄스의 수장인 프랭크 윌리엄스 경이 찾아오게 되는데, 윌리엄스의 설득에 다시 한 번 [[윌리엄스 레이싱|윌리엄스]]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이후 부활의 신호탄이 되는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